Charles Le Brun (샤를 르브룅)

샤를 르브룅(Charles Le Brun)은 16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조각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발휘하여 당시 프랑스의 대법관이었던 피에르 세기에(Pierre Séguier)의 눈에 띄게 되었다. 세기에는 르브룅이 프랑수아 페리에(François Perrier) 및 시몽 부에(Simon Vouet) 등의 화가들로부터 미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1642년부터 1645년까지 그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학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때 동행한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의 가르침은 그의 양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646년 파리로 돌아온 르브룅은 1647년부터 1651년까지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교화 제작을 담당했으며, 1648년에는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의 설립에 참여했다. 1649년에는 에슬랭 성, 1650년에는 랑베르 대저택의 장식을 맡았고, 1658년부터 1661년까지는 당시 재무 총감이었던 니콜라 푸케(Nicolas Fouquet)로부터 보-르-비콩트 성의 장식을 위한 업무 감독을 위임받았다. 그러나 이 성은 그 화려함 때문에 루이 14세(Louis XIV)의 질투를 불러일으켜 소유주인 푸케가 왕의 총애를 잃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르브룅은 푸케에 이어 재무 총감이 된 장 바티스트 콜베르(Jean-Baptiste Colbert)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으며, 1662년 루이 14세의 첫 번째 궁정화가로 임명받았다. 르브룅은 고블랭 왕립 직물 제작소의 총감을 맡게 되면서 이후 왕실의 거처를 짓는 현장을 관리 감독했다. 고블랭 제작소에서 그는 《왕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벽걸이용 직물 장식을 위한 밑그림을 그렸고, 은으로 세공한 가구 집기류의 원형을 만들어 제공하기도 했다. 또한 루브르 궁전에서는 《아폴론 갤러리》의 장식을 기획,감독했고, 베르사유 궁에서는 궁전 곳곳의 주요 장식물들을 만들었는데, 특히 《대사들의 계단》(1752년에 철거됨)과 《거울의 방》 장식은 그의 주요 작업의 결과물로 꼽을 수 있다.

르브룅은 화가로서뿐 아니라 미술의 종합적인 기획자 및 감독자로서 건축 장식에서 가구 집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예 분야에 걸쳐 루이 14세 양식의 육성에 이바지하는 등 왕궁의 예술 고문으로 활동했다. 또한 1663년에는 프랑스 왕립 미술 아카데미의 학장으로 임명되어 고전주의를 미의 규범으로 강화하고 프랑스의 국가 미학을 정립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1683년에 콜베르가 사망한 이후 궁전 관리부의 총감이 바뀌면서 그의 역할도 예전과 같을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루이 14세를 위한 종교적인 주제의 작품 제작에만 몰두하며 생의 말년을 보냈다. 1690년 파리에서 사망한 그는 자신이 장식을 맡았던 파리 생 니콜라 뒤 샤르도네 성당에 안치되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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