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es Gleyre (샤를 글레이르)

마르크 가브리엘 샤를 글레이르(Marc Gabriel Charles Gleyre)는 스위스 남서부에 있는 보(Vaud)주의 슈빌리(Chevilly)에서 1808년에 태어났다. 일각에서는 그가 태어난 해를 1806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글리에르는 8살 때 부모를 여의자 삼촌과 함께 살게 되었다. 삼촌은 프랑스 중부 오베르뉴 론 알프(Auvergne-Rhône-Alpes) 지역의 론(Rhône)주에 있는 리옹(Lyons)에 살고 있어 그는 이곳으로 이사를 했다. 이곳에서 예술적인 재능을 발견한 그는 장식 예술을 훈련받았다. 그러나 그는 주변의 권유로 그림에 전념하기로 마음먹고 1825년에 파리(Paris)로 가서 루이 에르스(Louis Hersent)의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글레이르는 이탈리아에서 오랜 기간 살았으며 근동지역(Near East)을 여행했다. 그는 코르푸 섬(Corfu), 그리스, 터키, 이집트를 방문한 후 수단의 수도인 카르툼(Khartoum)에서 1년을 머물렀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지자 1837년에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으며 1838년에 파리에 정착하게 된다.

글레이르는 파리 살롱에 작품을 전시했고 1843년에 2등 메달을 받는다. 1874년에는 파리의 부르봉 궁전(Palais Bourbon)에서 열린 알자스-로렌 전시회(Alsace-Lorraine exhibition)에서 2등 상을 받는다. 그는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에서 교수로 근무하면서 장 레옹 제롬(Jean Léon Gérôme), 장-루이 아몽(Jean-Louis Hamon),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에밀 다비드(Émile David),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장-프레데리크 바지유(Jean-Frédéric Bazille), 알프레드 시슬레(Alfred Sisley)와 같은 당대 거장들을 가르쳤다. 제자 중 한 명인 르누아르는 글레이르가 학생들이 평온한 분위기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는 매우 관용적인 교사였다고 말했다.

글레이그는 화가이자 데생 화가였다. 그는 주로 종교적인 주제, 신화적인 주제, 우화적인 주제를 다루었다. 그는 초상화와 장르화, 벽화를 그렸다. 글레이르는 루인 공작(Duc de Luynes)의 의뢰를 받아 당피에르 성(Château de Dampierre)의 큰 계단에 벽화를 그렸다. 또한 그는 파리에 있는 방생 드 폴 교회(hurch of St Vincent de Paul)에도 벽화를 그렸다. 글레이르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성신강림축일'(La Pentecôte, 19세기경), '저녁'(Les illusions perdues dit aussi Le Soir, 19세기경), '로마의 산적들'(Les brigands romains, 1831년), '산에서 내려오는 다프니스와 클로에'(Daphnis Et Chloe Revenant De La Montagne, 19세기경) 등이 있다. 그는 이상적이고 순수하며 신비로우면서도 완벽한 아름다움을 그림 속에서 묘사하려고 노력했다. 글레이르는 1874년 5월 5일에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현재 그의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 아비뇽 프티 팔레 미술관(Musée du Petit Palais, Avignon) 등에 소장되어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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