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lo Dolci (카를로 돌치)

카를로 돌치는 이탈리아 후기 매너리즘 시기의 피렌치 화파 작가였다. 그는 1616년 피렌체에서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625년 9살의 나이로 야코포 비날리(Jacopo Vignali)의 작업실에 들어가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돌치는 어린 나이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재능을 보여 1632년에는 독립 화가가 되었다. 실제로 그는 15세에 팔라초 피티(Palazzo Pitti)의 스테파노 델라 벨라(Stefano della Bella)의 초상화를 제작하며 일찍부터 유명세를 얻었다.

돌치는 스승인 야코포 비날리를 따라 그 당시에 이미 유행이 지나갔던 후기 매너리즘의 피렌치 화파 화풍을 고수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스승의 영향만 받은 것이 아니라 초창기에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기를란다이오(Ghirlandaio), 미켈란젤로(Michelangelo), 코레지오(Correggio) 등 15~16세기 거장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메디치 가문의 컬렉션을 연구하며 네덜란드 화가, 특히 윌렘 반 데어 아엘스트를 많이 연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즉, 이미 바로크로 넘어가던 시기에 르네상스 화풍을 가진 작가들을 위주로 연구하고 그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전통적인 화풍이 보수적인 후원자들의 취향과 잘 맞았는지 17세기 미술 이론가인 필리포 발디누치(Filippo Baldinucci)에 따르면 피에로 데 메디치(Piero de’Medici), 음악가 안토니오 란디니(Antonio Landini), 레오폴도 데 메디치(Leopoldo de’Medici) 추기경 등 여러 후원자들이 돌치에게 작품을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1640년대에 이르러서는 돌치에게 작품을 주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는 같은 주제로 여러 개의 작품을 그리기도 했는데 동방박사의 경배(The Adoration of the Kings)를 그 예시로 들 수 있다.

돌치는 종교화를 위주로 작업했는데 그 이유는 스승인 비날리에게서 영향을 받은 세밀한 필치와 피렌체 미술의 전형적인 우아한 디자인 그리고 생동감 넘치는 색감이 종교화에서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물론 종교화 이외에도 영국 출신의 인물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등 여러 회화 분야에서 활동했지만 널리 알려진 작품들의 대부분이 종교화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와 관련된 주제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돌치의 작품은 대부분 세밀화풍으로 그려졌는데 그림을 자세하게 그리다 보니 그의 작업 속도는 매우 느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동시대 다른 이탈리아 작가들과는 달리 전통적인 화풍을 고수함으로서 돌치는 자신만의 특색 있는 작품들을 많이 남길 수 있었다.

돌치의 작품들이 유명해지면서 그의 화풍을 모방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의 딸 아그네스 돌치(Agnese Dolci) 역시 아버지의 화풍을 따라 그리며 돌치의 복제품을 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록 돌치는 1686년 사망했지만 그의 작품은 17세기 이후부터 영국에서 더욱 높이 평가되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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