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 Joseph Benjamin Constant

(장 조세프 벤자민 콩스탕)

장 조제프 벤자민 콩스탕(Jean Joseph Benjamin Constant) 프랑스 파리(Paris)에서 1845년 6월 10일에 태어났다. 그는 벤자민 콩스탕(Benjamin Constant)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였다. 벤자민 콩스탕은 툴루즈(Toulouse)에 있는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그 후, 1866년에 파리로 이주하게 된 콩스탕은 파리에 있는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이듬해, 그는 알렉상드르 카바넬(Alexandre Cabanel)의 아틀리에에 들어갔고, 1868년에 로마상(Prix de Rome) 3등 상을 받았다.

벤자민 콩스탕은 1870년에 프로이센-프랑스 전쟁(Franco-Prussian War)이 발발하자 즉시 입대했고, 전쟁이 끝나고 난 후에 공부를 다시 시작하지 않고 스페인을 여행하는 것을 택했다. 그는 그곳에서 마리아 포르투니(Mariano José María Bernardo Fortuny y Marsal)를 만났다. 그 후 벤자민 콩스탕은 샤를 티소(Charles Tissot) 휘하의 사절단과 함께 모로코(Moroco)를 방문했는데, 이를 계기로 역사적인 주제를 그리던 그는 오리엔탈리즘을 다루기 시작했다. 1876년에 그는 에마뉴엘 아라고(Emmanuel Arago)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훗날 그의 딸 중 한 명과 결혼하게 된다.

벤자민 콩스탕은 1880년경부터 초상화와 장식 회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오리엔탈리즘적인 주제에 흥미를 잃게 된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 알렉산드리아 여왕(Queen Alexandria)과 오말 공작(Duke d'Aumale)과 같은 영국 상류층의 초상화를 그리며 명성을 쌓았으며, 그가 그린 초상화는 훌륭하다는 평을 들었다. 초상화를 그리면서 미국인 사업가들과도 친분을 쌓게 된 벤자민 콩스탕은 이들의 초대로 1887년과 1888년에 뉴욕을 방문하기도 한다.

벤자민 콩스탕은 1869년에 ‘햄릿과 왕’(Hamlet et le roi, 1869)을 살롱에서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정기적으로 살롱에서 작품을 전시하였다. 그는 1875년에는 모로코의 포로들(Moroccan Prisoners, 1875)로 동메달을 받았다. 또한 1876년에는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한 모하메드 2세’(Mohamet II Entering Constantinople, 1876년경)로 은메달을, 1896년에는 ‘화가의 아들, 앙드레 벤자민 콘스탄트’(André Benjamin -Constant, fils du peintre, 1895)로 명예 메달을 수상했다. 또한 그는 1878년에 열린 만국 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에서 동메달을 받았으며, 프랑스의 명예로운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를 받았다.

벤자민 콩스탕은 1883년부터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1888년에는 아카데미 줄리안(Académie Julian)에서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1893년에 연구소의 회원이 되었고, 한 단계 높은 레지옹 도뇌르(Commandeur de la Légion d'Honneur)를 수여했다.

벤자민 콩스탕은 작업 초기에 색채와 디테일이 풍부하고 화려한 오리엔탈리즘적인 그림을 주로 그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초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미국의 주요 인물들과 유럽의 왕족들을 캔버스에 담기 시작했다. 1880년 이후부터는 그는 파리 시청의 연회장, 소르본 대학(Sorbonne), 오페라 코미크(Opéra Comique)의 천장 장식 등의 장식화를 담당하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를 거쳐 오며 작업했던 벤자민 콩스탕은 파리에서 1902년 5월 26일에 세상을 떠났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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