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onio Mancini (안토니오 만치니)

안토니오 만치니(Antonio Mancini, 1852-1930)는 1852년 11월 14일 로마(Roma)에서 태어났다. 나르니(Narni) 출신의 재단사 부모님은 일찍 아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집 근처의 장식 학교에 보냈으며 더 좋은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 온 가족 모두 이사를 갔다. 그는 1865년 7월 12살의 어린 나이로 나폴리 국립 미술원(Accademia di belle arti di Napoli)에서 미술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는 미술원의 원장이었던 스타니슬라오 리스타(Stanislao Lista, 1824-1908)와 필리포 팔리치(Filippo Palizzi, 1818-1899)에게 사사했다. 1868년부터는 도메니코 모렐리(Domenico Morelli, 1823-1901)의 가르침을 받아 베리스모(Verismo) 경향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스승 모렐리는 만치니 작품의 첫 구매자로 자신의 학생을 패션 디자이너인 마리아노 포르투니(Mariano Fortuny, 1871-1949)에게 소개했다.

포르투니의 도움으로 만치니는 미술계의 여러 인물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그는 파리(Paris) 구필화랑(Goupil&Cie)의 설립자 아돌프 구필(Adolphe Goupil, 1806-1893)의 집에 머물며 1876년 살롱(Salon) 전에 '가련한 아동'(Pauvre écolier, 1876)을 출품했다. 그는 파리에 머물며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와 친분을 쌓으며 다양한 주제를 자유롭게 택하여 원하는 그림을 그렸다.

거리 공연을 인상깊게 본 그는 '곡예사'(Il Saltimbanco, 1879)를 그렸으며 이와 같은 주제는 나폴리에서도 그린 바 있다. 파리에 오기 전에 만치니는 빈센초 제미토(Vincenzo Gemito, 1852-1929)와 함께 수업이 없는 날이면 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을 모델로 삼아 일상적인 그림을 그렸다. 두 사람은 고전적인 교육을 받았지만 신화나 성경 속 주제가 아닌 일상 생활 속의 주제들에 흥미를 느꼈다. '서커스 소년'(A Circus Boy, 1872)은 나폴리에서의 학창 시절 중의 대표작품이다.

그러나 신경쇠약으로 인해 파리에 머물던 만치니는 1879년 다시 나폴리(Napoli)로 돌아왔다. 4년동안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다 병에 차도가 생기자 그는 파리와 런던(London)을 오가며 많은 화가들과 교류했다. 특히 런던에서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와의 친밀한 교류는 유명하며 그의 소개로 런던 사교계 인물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다.

그는 미셸 카마라노(Michele Cammarano, 1835-1920) 쥬세페 드 네티스(Giuseppe de Nittis, 1846-1884) 등 유수의 화가들에게도 인정받았지만 1879년 나폴리로 다시 돌아와 조각가 빈센초 제미토(Vincenzo Gemito, 1852-1929)와 상당히 폐쇄적으로 살았다고 알려졌다. 만치니는 1883년에야 로마에 자리를 잡고 경력 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스튜디오를 열고 원근법에 대한 실험을 꾸준히 하며 베리스모 경향의 그림을 발전시켜 나갔다. 만치니는 미국인들을 비롯하여 많은 의뢰인들을 확보했지만 생계는 여전히 궁핍했다. 그는 고위직의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하여 근근히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힘겨웠던 어린 시절을 반영하여 녹록치 않은 삶을 사는 이들에 대한 주제로 꾸준히 그림을 그렸고 말년에는 이탈리아의 큰 전시들에 참여했다. 1930년 12월 28일 로마에서 사망한 안토니오 만치니는 산티 보니파시오 에 알레시오 대성당(Basilica dei Santi Bonifacio e Alessio)의 묘소에 묻혔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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