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ma da Conegliano (치마 다 코넬리아노)
지오반니 바티스타 치마 다 코넬리아노(Giovanni Battista Cima da Conegliano)는 1459년경 이탈리아의 코넬리아노(Congliano)의 울을 다듬고 완성한 공예가 집안인 치마토리 디 파니(Cimatory di panni)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비센자(Vicenza)의 바르톨로메 몬태냐(Bartolomeo Montagna)의 제자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지오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치마는 1480년대 초중반에 베니스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유는 1473년에 그의 이름이 코넬리아노의 세금 기록에서 처음 언급되었으나 1492년에 작성된 문서에는 치마가 베니스에 거주하는 것으로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치마의 가장 초기 작품으로 전해지는 것은 1489년에 제작된 비센자(Vicenza)에 있는 성 바르톨로메(S.Bartolomeo) 성당의 제단화다. 제단화로 이름을 알리게 된 치마는 1490년대부터 베니스에서 여러 제단화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동시대 화가였던 지오반니 벨리니가 도게(Doge) 궁 장식을 맡으며 치마는 베네토(Veneto)의 대표 제단화 화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가 남긴 제단화들은 30여개 정도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이는 꽤 많은 양이다. 치마의 전성기 작업들은 대부분 자신이 태어난 코넬리아노 주변의 목가적인 풍경 배경을 바탕으로 그려졌다. 특히 그는 광대한 풍경화가 두드러지는 광야의 성 제롬(S.Jerome)과 같은 주제를 뛰어나게 잘 그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치마의 작품들에서는 구성들이 조화롭고 맑고 따뜻한 색채, 명확하게 정의된 공간 배열, 목가적인풍경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이 스타일을 일찍부터 발전시켜 죽을 때까지 고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치마는 소박한(시골에서 온) 벨리니라고 불릴 정도로 벨리니와 화풍이 유사했는데 특히 인물 표현 방식이 비슷하다. 실제로 치마의 작품에서 여성들은 일반화 되어 나타나고 남성들은 특정 초상화처럼 나타난다. 치마는 도상에서도 벨리니와 유사점을 보이는데 그의 작품 중에는 성모자 도상이 굉장히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치마를 부를 때 소박하다는 말이 붙을 정도로 그의 작품들은 순진하고 단순했는데 성모자와 성 미카엘과 앤드류(The Virgin and Child with Saints Michael and Andrew), 성 토마스의 의심(The Incredulity of St Thomas)과 같은 제단화에서는 기념비적인 성격과 고전적으로 구성된 인물들, 화려하면서도 목가적인 풍경과 역동적이고 비대칭적인 구성을 볼 수 있다. 이런 요소들을 통해 치마가 베네치아 화풍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치마는 파르마(Perma)와 트레비소(Treviso)를 비롯해 베니스의 많은 도시에서 일했는데 그러면서도 자신의 고향인 코넬리아노와 계속 교류하며 베네치아 화풍의 제단화를 여러 곳에 수출하기도 했다.
치마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주제들을 많이 다뤘지만 그의 화풍은 처음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시기부터 말년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많은 주문을 받아 제단화를 제작했다는 것은 치마의 작품이 매우 훌륭했으며 보수적인 후원자의 취향을 잘 파악했음을 증명한다. 치마가 마지막으로 제작했다고 전해지는 작품은 1516년이며 1517~1518년 이후로는 그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아 이 시기에 사망한 것으로 추측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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