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Antoine Watteau (장 앙투안 와토)

로코코 양식의 대가 와토는 프랑스 발랑시엔에서 태어나 1702년 파리로 이주했다. 당시 발랑시엔은 스페인령 네덜란드 속했던 곳이었고 와토는 루벤스와 반다이크 같은 플랑드르 미술 전통의 영향 아래 성장했다.

1705년경, 와토는 클로드 질로(Claude Gillot)의 작업장에서 연극 무대를 장식하고 명작을 모사하는 일을 하며, 자신의 양식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1711년 이후 부유한 은행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피에르 크로자(Pierre Crozat)를 소개받았고, 그가 소장하고 있던 루벤스의 그림과 티치아노를 비롯한 베네치아 화가들의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는 와토의 우아하고 매력적인 양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1712년 왕립 미술아카데미의 회원이 된 와토는 1717년 <키테라 섬의 순례>를 아카데미의 입회작으로 제출했다. 와토의 이 그림은 기존의 어떤 장르에도 적합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카데미는 숲이나 정원을 배경으로 춤추거나 산책을 하는 세련된 옷차림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러한 그림을 지칭하기 위해 ‘페트 갈랑트(fête galantes)’라는 새로운 용어를 고안했다. 병약했던 와토는 1719년에 폐병을 치료하기 위해 런던으로 가기도 했다.

이후 노트르담 다리에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화상 제르생을 위한 간판 그림 <제르생의 간판>을 제작했고, 이 그림을 완성하고 얼마 후에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와토는 18세기 중반 이래 프랑스 평단에서 다른 로코코 화가들과 함께 경박하고 인위적이고 퇴폐적인 화가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현재는 프랑스 혁명 이전, 18세기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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