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fred Sisley (알프레드 시슬레)

시슬레는 1839년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부모는 영국인이었다. 영국 국적을 갖고 있었음에도 1857-61년 공부를 하기 위해 런던에서 지낸 시기와 몇 번의 여행을 제외하고는 전 생애를 프랑스에서 보냈다. 그는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기를 거부하고 1862년 샤를 글레르의 화실에 들어가 바지유, 모네, 르누아르를 만났다. 이들과 함께 파리 근교의 퐁텐블로 숲에서 풍경화를 그리면서 끊임없이 변하는 빛의 효과를 탐구했다. 1866년 처음으로 살롱전에 입선하고, 1870년에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을 피해 런던으로 갔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재정적 지원이 끊기면서 어려움을 겪었고 이후 궁핍한 삶을 살았다. 1870년대에는 루브시엔과 포르 마를리 등 센 강 유역에서 외광 풍경화 양식을 발전시켰으며, 1879년과 1880년, 1886년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했다. 1880년대에는 시슬레 가족은 퐁텐블로에서 가까운 모레쉬르루앙의 작은 마을에 정착했다. 이즈음 평론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모네와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달리 시슬레는 대중적인 인기도 없고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그의 경제적 여건은 더욱 악화되었다. 시슬레는 빛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마을의 교회와 오솔길 등을 소재로 많은 풍경화를 제작했다. 특히 <모레의 교회>를 반복적으로 그리면서 주제가 다른 환경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담아냈다. 모네와 르누아르와 달리 시골을 동경한 그는 하늘, 강, 숲 같은 자연풍경을 즐겨 그렸으며 특히 퐁텐블로 주변의 시골 마을 풍경을 서정적으로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바르비종 화파나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이나 그 영향을 받은 영국의 풍경화의 작품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899년 그는 모레쉬르루앙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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