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erto Pasini (알베르토 파시니)
알베르토 파시니(Alberto Pasini, 1825-1899)는 1825년 9월 3일 이탈리아 부세토(Busseto)에서 태어났다. 1828년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파르마(Parma)로 이주하여 미니어처(miniature) 화가였던 파시니의 삼촌 안토니오 파시니(Antonio Pasini, 1770-1845)에게서 생계에 도움을 받았다. 파시니는 일찍이 그의 재능을 드러냈으며 17살의 나이로 파르마 미술 아카데미(Accademia di Belle Arti in Parma)에 입학하여 외젠 시세리(Eugène Cicéri, 1813-1890), 테오도르 루소(Théodore Rousseau, 1812-1867), 외젠 이사베이(Eugène Isabey, 1803-1886)에게 사사했다.
제1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Prima Guerra d'Indipendenza Italiana, 1848-1849)에 참전한 후 파리(Paris)로 이주하였고 1853년 살롱(Salon) 전에 동판화 '저녁'(Le soir, 1853)을 선보였다. 파리에 자신의 실력을 알린 파시니는 테오도르 샤세리오(Théodore Chassériau, 1819-1856)의 작업실에서 일하며 바르비종 화파(École de Barbizon)의 작가들과 친분을 쌓았다. 샤세리오와 함께 일하며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을 접하게 된 그는 1855년 2월 프랑스의 외교관 니콜라 부레(Nicolas Prosper Bourée, 1811-1886)와 함께 페르시아의 테헤란(Teheran)으로 떠났다. 파시니는 그곳에서 10개월동안 외교 사절로서 그림을 그렸다.
1860년에는 그의 평생 동반자였던 마리아나 셀리(Marianna Celli)와 결혼하여 딸을 얻었다.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풍경화를 그리던 파시니는 부레와 함께 1867년 10월부터 9개월동안 콘스탄티노플에 머물며 외교 업무를 수행했다. 이듬해 그는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의 압둘아지즈(Abdulaziz, 1830-1876)의 의뢰를 받아 4건의 그림을 그렸으며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Franco-Prussian War, 1870-1871)으로 인해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파시니는 피에몬테(Piemonte) 주의 카보레토(Cavoretto)에 정착하여 작업장을 열었다. 토리노(Torino) 근방의 작은 마을에서 작업하며 1879년, 1883년에 베네치아(Venezia), 그리스의 아테네(Atene), 스페인에 머물기도 했다. 파리 만국박람회(L'Exposition Universelle de Paris)에서 여러 회 메달을 받았으며 1868년에는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를 수여했다.
파시니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스크'(A Mosque, 1886)에는 아랍의 일상생활과 유럽식 제복을 입은 인물들의 모습이 함께 나타난다. 그는 여러 차례 여행을 다니며 보고 느꼈던 것들을 화면 속에 구현하였으며 유럽식 제복을 입은 인물들을 배치하기도 하며 문화 교류의 현장을 생생히 그려내었다. 알베르토 파시니는 1899년 12월 15일 카보레토에서 사망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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