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esco Guardi (프란체스코 과르디)
프란체스코 과르디(Francesco Guardi)는 1712년 베네치아 트렌티노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과르디는 화가였던 아버지 도메니코(Domenico)의 영향을 받아 화가가 되었으며 그의 형제인 니콜로(Niccolò)와 지오반니 안토니오(Giovanni Antonio)도 화가였다. 과르디는 아버지의 아틀리에에서 작업을 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형인 지오반니 안토니오와 함께 아틀리에를 운영했다. 지오반니 안토니오는 베네치아 아카데미 창립 멤버였다. 여동생인 마리아 세실리아는 유명한 화가였던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Giovanni Battista Tiepolo)와 결혼했다. 이때 과르디가 티에폴로의 밝고 생기 있는 화풍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과르디의 화풍과 관련해서는 남아있는 문서나 초기 작품이 거의 없어 정확히 누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프란체스코 과르디와 지오반니 안토니오와의 화풍 차이를 보았을 때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모방했던 과르디 가문의 방식을 기반으로 형제는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
과르디가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1750년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보이는데 이때 과르디는 카날레토(Canlaletto)와 미슐레 마리에스키(Michele Marieschi)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과르디의 서명이 남겨진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알려진 것은 피아제타의 마디 그라스(Mardi Gras in the Piazzetta, 1758)이다. 과르디는 두 작가들의 작품을 참고하면서도 자유로운 페인트 처리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발했다. 그는 특히 베네치아의 분위기나 물에 비친 빛의 효과를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런 양식의 예로는 건축물을 그린 카프리초(An Architectual Caprice, 1770~1780)가 있다. 풍경화에 관심을 가진 과르디는 다른 풍경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베네치아 축제나 18세기에 인기 있었던 건축 혹은 풍경 산수화를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다.
1770년대에 들어서 과르디는 캔버스 표면 전체에 반짝이는 공기를 베일처럼 표현하기 위해 부드럽고 시원한 바탕과 다양한 색들을 미묘하게 표현하는 기법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표현을 적극적으로 나타나게 하기 위해 건물의 상대적 비율도 수정했다.
1780~1790년대에도 과르디는 여전히 느슨한 붓놀림이나 표현적인 원근법을 사용했으며 명암을 표현하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계속 빛의 변화와 관련된 효과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 시기에는 과르디가 나이가 많았을 때라 그의 아들인 지아코모가 아버지의 화풍을 따라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1793년 과르디가 사망한 이후에도 지아코모는 아버지 화풍의 작품을 제작했는데 상당히 질이 떨어지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서명을 해 마치 프란체스코 과르디의 작품인 것처럼 팔기도 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오늘의 명화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년 07월 23일) 오늘의 명화산책. (0) | 2023.07.23 |
---|---|
(2023년 07월 22일) 오늘의 명화산책. (0) | 2023.07.22 |
(2023년 07월 20일) 오늘의 명화산책. (0) | 2023.07.20 |
(2023년 07월 19일) 오늘의 명화산책. (0) | 2023.07.19 |
(2023년 07월 18일) 오늘의 명화산책. (0) | 2023.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