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nest Ange Duez (에르네스트 앙쥬 뒤에)
에르네스트 앙쥬 뒤에(Ernest Ange Duez)는 1843년 프랑스 파리(Paris)에서 태어났다. 그는 20대 초반에 가업인 비단 사업을 배워야했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회화 훈련을 늦게 받았다. 그는 1870년대에 유명한 사실주의 화가인 카를로스 듀란(Carolus-Duran)의 아틀리에에 들어가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와 함께 일했다. 이후 뒤에와 사전트는 베르티에 가(Boulevard Berthier)에 있는 아틀리에에서 일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폴 알베르 베스나드(Paul-Albert Besnard), 아브리엘 포레(Gabriel Fauré), 자크 에밀 블랑슈(Jacques-Émile Blanche), 조반니 볼디니(Giovanni Boldini) 등과 어울렸다. 1882년 12월 뒤에와 사전트는 조르주 피티 갤러리(Galerie Georges Petit)에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두 인물은 모두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의 열렬한 숭배자였다. 마네는 도시의 삶, 여가 생활의 모습 그리고 옛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한 그림을 그린 인물이다. 그의 작품은 밝은 색채, 평면적인 구도, 대담한 주제 등을 특징으로 한다. 마네를 따랐던 많은 예술가들처럼 뒤에는 살롱전(Salon)과의 관계를 끊는 것을 거부하면서도 인상주의의 원칙을 따르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뒤에가 그린 화제는 대부분 1880년대에 인상주의자들이 선택한 파리의 부르주아 계층의 삶이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인기를 끈 것으로는 상류 사회, 마을이나 불로뉴(Boulogne)에서 볼 법한 바닷가 옆의 한적한 곳에 있는 우아한 숙녀를 그린 그림이 있다. 그는 경력 초기에 자연주의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고, 이는 살롱전(Salon)의 많은 관객들을 놀라게 했으며 인상주의의 가르침을 옹호하는 예술가로도 보이게 만들었다. 뒤에는 풍경화에 흥미를 느끼고 노르망디의 트루빌슈르메르(Trouville)와 옹플뢰르(Honfleur) 사이에 있는 빌러빌(Villerville)로 이주했다. 그는 이 지역의 빛과 분위기에 사로잡혀 1878년경에는 바닷가를 앞에 유리 작업실을 지었다. 그는 인상주의자들처럼 실제 풍경을 작품의 배경으로 삽입했으나 그들보다 더 차분하고 아카데믹한 데생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1874년 살롱전(Salon)에서 3등상을 받았고, 1879년에는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성 퀴트 베르, 세폭화'(Saint Cuthbert, triptyque, 19세기경)를 그렸다. 이 작품은 성인 성 퀴트베르의 일화와 노르망디 해안의 풍경을 결합한 그림으로 자연주의적인 묘사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당시 관객들은 역사 지향적인 설정 대신 뒤에가 머물고 있던 빌러빌을 풍경으로 설정한 현대적인 사고에 충격을 받았다. 이 후 뒤에는 바닷가에서 젊은 여성들이 파라솔을 들고 즐기는 모습, 물가에서 노는 장면 등을 그렸으나, '퀴트베르, 세폭화' 만큼 주목받는 작품을 그리진 못했다.
몇 년 동안 그는 초상화가로 명성을 쌓았다. 그는 아내의 초상화 외에도 '윌리스 뷔탱, 화가'(Ulysse Butin (1838-1883), peintre, 19세기경), '알퐁즈 드 뇌빌, 화가'(Alphonse de Neuville (1835-1885), peintre, 19세기경)을 그렸다. 그 후 뒤에는 초상화보다 역사적이고 우화적인 풍경화를 그리는데 매진했다. 1888년 그는 소르본 대학(Universite de la Sorbonne)을 위해 숲의 영감을 주제로 함 장식 패널을 그렸고, 1892년에는 파리 시청을 위해 식물학과 물리학을 상징하는 우화적인 인물들을 그렸다. 작품활동을 하던 중에도 그는 살롱전과의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파리 살롱전(Salon)에서 배심원으로 8번 임명되었고,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William-Adolphe Bouguereau), 알렉상드르 카바넬(Alexandre Cabanel), 장 폴 로랑스(Jean-Paul Laurens) 등과 함께 프랑스 예술가협회(Société des Artistes Français)의 행정부를 구성하는 제1회 명예 평의회의 회원이 되었다. 1890년에는 보자르 협회(Société Nationale des Beaux-Arts)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1896년 생제르맹 숲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떨어져 55세의 나이에 뇌출혈로 사망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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