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lbert Cuyp (알베르트 코이프)
알베르트 코이프(Aelbert Cuyp)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코이프는 1620년 10월 20일 네덜란드 도르트레히트(Dordrecht)에서 화가 야콥 헤리트 코이프(Jacob Gerritsz. Cuyp, 1594-1652)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성공적인 초상화가였던 아버지의 스튜디오에서 미술교육을 받았다. 견습 기간이 끝난 후 아버지는 인물을 그리고 코이프는 인물화의 배경을 그리는 방식으로 부자가 함께 작업하였다. 이러한 실용적 경험은 나중에 코이프가 주로 그리게 되는 육지와 바다 풍경화를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코이프의 작업을 시작한 초기, 1640년대의 작품들에는 얀 반 호이엔(Jan van Goyen, 1596-1656)과 위트레흐트 출신의 얀 보트(Jan Both, 1615-1652)로부터 받은 영향이 잘 드러나고 있다. 두 화가는 로마를 여행한 후 네덜란드의 풍경을 이탈리아적으로 해석했다. 그들의 그림에서 드러나는 전형적인 지중해풍의 따뜻한 햇살은 다소 차가운 하얀 빛을 사용하는 북부의 전형적인 미술 작품들과 대비된다.
코이프는 1641년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얀 보트의 작품을 연구하며 얀 반 호이엔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을 떠났다. 헤이그(Hague), 위트레흐트(Utrecht), 아른헴(Arnhem) 등을 방문하며 네덜란드의 목가적인 풍경 속에 소와 말, 강가의 정경, 해병대의 모습 등을 다양하게 담으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발하였다. 간혹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영향을 받은 초상화를 그리기는 하였으나 그가 주력한 것은 풍경화이다.
알베르트 코이프는 특히 빛을 다루는 데 능했으며, 햇빛을 비롯해 구름, 일몰 때의 하늘, 천둥, 폭풍우와 같은 대기 요소들을 뛰어나게 포착했다. 그는 조용하고 햇빛이 잘 드는 곳을 찾아, 이른 아침의 흐릿한 풍경, 빛나는 오후, 저녁의 태양이 내뿜는 황금빛을 그렸다. 도르트레히트의 마스(Maas) 강둑 근방에 거주하던 그는 여름과 가을의 따뜻한 햇살이 호박빛으로 언덕을 감싸고, 물에 반영되는 장면을 관찰하여 화폭에 담았다.
1646년 7월, 3만 명의 군인이 타고 있는 네덜란드 수송선이 마스(Maas) 강과 라인(Rhine) 강의 합류지점에 위치한 도르트레히트에 도착했다. '도르드레흐트의 항구(The Maas at Dordrecht, 1660년경)'는 스페인 왕실로부터 북부 지방의 독립을 위해 맞섰던 반란군의 모습을 담고 있다. 코이프는 1648년 뮌스터에서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Westfälischer Friede von Munster, 1648년 10월 24일)으로 이어지는 역사적인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부두에 몰려든 군중들을 향해 나팔과 드럼은 팡파레를 울린다. 도르트레히트를 상징하는 흰색과 빨간색의 띠를 두른 젊은 장교는 작은 보트를 타고 대형 수송선에 다가가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출정하는 것처럼 깃발이 펄럭이고 있지만 안정적인 구도의 거대한 구름과 초여름 아침의 여명은 전체적인 장면을 평온하게 연출하고 있다.
1658년 부유한 과부 코넬리아 보즈만(Cornelia Bosman, 1617-1689)과 결혼한 코이프는 그의 미술 경력을 거의 포기하고 네덜란드 개혁 교회에서 장로직책을 맡아 봉사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1665년 이후로는 작품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코이프의 경력이 끊긴 시점은 네덜란드 황금 시대가 저물던 시점과 일치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네덜란드 회화를 언급할 때 알베르트 코이프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을 연구할 때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그는 그림에 서명과 날짜를 잘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작품의 정확한 연대가 규정되는 것이 어려우며 동일한 이니셜을 지닌 아브라함 반 칼라트(Abraham van Calraet, 1642-1722)의 작품들이 코이프에게 귀속되는 등의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는 1691년 11월 13일 사망하였으며 도르트레히트의 아우구스티니안 교회(Augustijnenkerk)에서 장례가 치러졌다. 사후에 코이프의 작품들은 도르트레히트 지방 밖에서는 거의 잊혀 졌으나 18세기 말, 영국에서 재발견되었다. 영국 하노버 왕조의 조지 4세(George IV, 1762-1830)가 그의 작품을 수집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초에는 코이프가 렘브란트의 작품보다 더 비싼 값에 팔렸다. 오늘날 알베르트 코이프의 작품들은 대부분 영국에서 소장하고 있다.
*출처 : 네비어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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