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4월 14일) 오늘의 명화산책.
Auguste Toulmouche (오귀스트 툴무슈)
1829년 프랑스 낭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지역 예술가들로부터 디자인, 회화, 조각을 배웠고, 1846년 파리로 건너가 화가 샤를 글레르의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툴무슈는 그의 지도 하에 본격적인 미술 훈련을 받은 후, 19살이었던 1848년 파리 살롱에서 그의 첫 번째 그림을 전시했다. 1849년과 1850년 다시 전시회를 열었고, 당시에는 초상화를 주로 제작하였다.
툴무슈는 당시 미술계에 지배적이었던 학구적이고 현실적인 스타일을 이상화하는 방식으로 그렸다. 그의 작품 주제는 부르주아지에 속한 파리 여성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집안을 배경으로 연애 고민을 가진 젊은 여성들, 또는 어머니와 아이들의 모습을 주로 그렸다. 특히 툴무슈의 인물들은 연극 레퍼토리의 일부였을 양식화된 몸짓을 통해 다양한 정서를 표현한 것이 특징이었다. '코스튬 페인팅'라고도 불린 이러한 유형의 그림은 감정적 표현력을 일상의 낭만적 서사를 묘사하는 데 활용하였다.
그의 작품은 당시 프랑스 중상류층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다. 나폴레옹 3세는 1852년 훗날 황후가 될 유제니를 위해 그의 그림 중 하나인 〈소녀 La Fille〉를 구입했다. 이듬해 유제니는 그의 또 다른 작품을 구입하였다. 또한 툴무슈는 1852년과 1861년 파리 살롱에서 연달아 메달을 받으면서 화가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1860년대에 툴무슈는 그의 스타일을 다듬었고, 더 복잡한 구성을 탐구하면서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을 시도하기도 했다. 1870년 레지옹도뇌르훈장을 받았다.
전성기 동안 그의 명성은 알프레드 스테방스와 카롤루스 뒤랑과 같은 예술가들의 명성에 필적했다. 그러나 호화로운 옷차림과 화려한 가구에 중점을 둔 그의 그림들은 일부 비평가들에 의해 평가절하되기도 했고, 1870년대에 인상주의가 부상하면서 그의 인기는 계속 하락세를 겪었다.
한편, 툴무슈의 작품은 미국에서도 찬사를 받았다. 그의 작품들은 적당한 크기에 시각적 매력이 큰 이미지였기 때문에 파리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개인 수집가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심지어 1877년 한 월간지에 실린 프랑스 미술에 대해 폄하하는 기사에서도 그의 작품은 호의적으로 언급되었다. 1878년 개최된 만국박람회에서 툴무슈의 그림은 다시 한번 3등 훈장을 받았다. 1890년 파리에서 6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오늘날 그의 작품 대부분은 여전히 개인 소장품으로 남아있지만, 루브르박물관 등 프랑스와 미국의 몇몇 박물관 및 미술관에서도 소장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