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7월 09일) 오늘의 명화산책.
Ferdinand Heilbuth (페르디낭 에일뷔트)
1826년 독일의 함부르크(Hamburg)에서 태어난 페르디낭 에일뷔트(Ferdinand Heilbuth)는 유대교 랍비의 아들이었다. 그는 독일의 뒤셀도르프(Düsseldorf), 이탈리아 로마(Rome)를 거쳐 프랑스 제 2공화정이 시작되기 직전에 파리(Paris)로 이동한다. 파리에서 에일뷔트는 스위스 예술가였던 마르크 가브리엘 샤를 글레르(Marc Gabriel Charles Gleyre)의 아틀리에에 등록하여 미술 공부를 한다.
그는 1857년과, 1859년, 그리고 1861년에 파리의 살롱전(salon展)에서 2등 상을 수상하였으며, 1861년에는 동시에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의 기사 훈장을 받았다. 에일뷔트는 또한 1863년부터 장르화와 초상화로 프랑스 파리의 살롱전에 참여한다. 프랑스에 정착한 글레르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1876년에 에일뷔트는 프랑스 시민권을 획득한다. 귀화 이후 1881년 에일뷔트는 레지옹 도뇌르의 장교(Officier) 등급으로 승급한다.
프랑스 외부에서 에일뷔트의 활동은 영국의 수도인 런던(London)으로 간 1870년 이후를 주목할 수 있다. 1871년부터 1878년까지 영국 왕립 미술원(Royal Academy)와 그로스베너 갤러리(Grosvenor Gallery)에서 전시를 연다. 에일뷔트는 초상화가로서 탁월한 재능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풍경화와 야외 장르화에도 정통한 화가였다. 에일뷔트의 작품의 양식과 주제 선정은 19세기 프랑스 출신의 영국 화가인 자메 티소트(James Tissot)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었다. 또한, 페르디낭 에일뷔트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시대를 살았던 화가인 안톤 반 라파르트(Anton Van Rappard)와 나눈 편지에서 여러차례 언급되기도 하여 반 고흐가 감탄을 자아낸 화가로 평가된다.
1889년 사망 이후 페르디낭 에일뷔트는 파리의 가장 큰 공동묘지인 페르 라셰즈(Cimetière du Père-Lachaise)에 안장되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