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6월 05일) 오늘의 명화산책.
Domenico Ghirlandaio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도메니코 기를란다요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산드로 보티첼리와 비교해볼 때 시대에 뒤떨어진 화가였다. '기를란다요'라는 그의 별명은 화환 제작자를 뜻하며, 금세공사인 아버지가 꽃목걸이를 만들어 피렌체 여성들에게 팔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기를란다요는 아버지의 가게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화가로서 출발했던 것으로 전해지며, 화가 알레소 발도비네티의 도제가 되어 회화와 모자이크를 배웠다.
그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자신의 두 형제들과 함께 잘 조직된 대형 공방을 운영했다. 기를란다요는 프레스코에 뛰어났고, 템페라 물감으로 초상화 몇 점을 그리긴 했지만 유화는 전혀 그리지 않았다. 그의 가장 중요한 기술 중의 하나는 동시대 사람들의 초상화를 실물 그대로 그리는 것이었다. 기를란다요는 수수한 색들을 사용했고, 자신의 그림에 금박을 사용하지 않은 최초의 화가로 일컬어진다. 그는 교황 식스투스 4세로부터 로마에 있는 시스티나 예배당에 프레스코를 제작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교황의 요청으로 제작된 <첫 사도들을 부름>(1481)은 로마에 거주하던 동시대 피렌체 사람들의 초상을 사실적으로 그려 넣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기를란다요의 프레스코 대부분은 피렌체에 있다. 그의 가장 대규모 프레스코 연작은 명망과 권세를 누리던 메디치 가문의 은행가인 조반니 토르나부오니로부터 의뢰를 받은 것으로,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의 성가대석 벽면에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의 생애'를 그린 것이었다.
기를란다요는 이 이야기를 마치 부유한 피렌체 가정에서 일어난 일처럼 그려내기 위해 인물들을 복잡하게 배치했다. 그의 후원자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토르나부오니 가(家)의 가족들을 모델로 그린 스물한 점의 초상을 작품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이 작품은 중산층의 기호에 맞는 그 당시의 생활양식과 풍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